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천재 그 이상’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조각가, 건축가, 음악가, 과학자, 발명가, 해부학자, 지질학자, 식물학자, 지도 제작자이다. 한 분야에서도 족적을 남긴다는 게 어려운 일이겠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천재적인 업적을 수두룩 남겼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 중 한 명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452년 4월 15일에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지방 빈치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법률가로 뛰어난 엘리트였지만, 혼외자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4살 때부터 예술과 과학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안 죠시오 라오니에게 조각과 회화를 배우는 동안 그림 그리기에 대한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1478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피렌체로 이주하여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화가로서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때 그는 그 유명한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을 그렸고, 1482년 ~ 1499년엔 밀라노로 이동하여 군사 공학, 건축, 회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최후의 만찬'을 그림을 그렸다. 1500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피렌체로 돌아와 '부시' 가문에서 다양한 창작활동을 하였다. 그 후 로마로 이동하여 예술과 과학에 대한 탐구를 이어갔다. 1513년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의 서기관으로 활동하던 중에 세상을 떠났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대표 작품
모나리자(The Mona Lisa)
1503년에서 1506년 사이에 그린 작품으로 현재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작품은 예술의 걸작으로 꼽히며 미소와 시선의 표현, 그림의 기술적 완성도 등이 독특하게 어우러져 있다. 특징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모나리자는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는 여성으로 더 자세하게는 약간의 수줍은 듯한 미소를 지으며 보인다. 미소는 매우 신비로워 비밀스러움과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또한 모나리자의 뒷 배경에는 평화로운 강과 거친 산들이 그려져 는데 탁월한 조향 능력을 보여주며 작품에 깊이와 입체감을 더해 유명하다.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이 마지막 만찬을 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렸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 작품을 1495년부터 1498년까지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 그라치에 있는 도미니코 수녀원의 식당 벽에 그렸다. ‘최후의 만찬’은 깊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림에 나오는 다양한 인물, 즉 각 제자의 얼굴과 몸짓을 통해 각 인물의 감정과 심리를 세밀하게 표현하였다. 예수의 고요하고 진중한 표정, 제자들 사이의 상호작용 등이 그려져 있다. 또한 인물들의 포즈와 배치는 조각적으로 조화롭게 배열되어 있다. 예를 들어, 예수의 성찬상을 중심으로 그를 둘러싼 제자들의 동작과 포즈는 예술적으로 조화로움을 이루고 있다.
비트루비우스 인간(Vitruvian Man)
비트루비우스 인간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의해 그려진 유명한 드로잉 중 하나이다. 이 드로잉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공부한 고대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Vitruvius)의 저서 "건축에 대한 10권(De architectura)"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 드로잉을 통해 인체의 비례와 대칭에 대한 연구 하였다.
암굴의 성모(The Virgin of the Rocks)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두 번에 걸쳐 그린 두 개의 작품 중 하나이다. 두 작품은 각각 ‘암굴의 성모’와 ‘파리의 성모’라고도 불린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밀라노 성당의 알타르피스에 두 번째로 그린 "암굴의 성모"를 시작했다. 그러나 주문한 이들과의 분쟁으로 작업이 중단되었고, 이후 프랑스로 이주한 다빈치가 1499년에 프랑스 국왕 요청을 받았다. 프랑스에서 다시 그린 작품은 더욱 복잡하고 기술적으로 정교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은 현재는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작품에는 성모 마리아, 성 요한, 예수 아기, 그리고 천사들이 나오며, 돌과 바위에 특유의 광택과 그림자 처리가 돋보인다.